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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새게 만드는 유튜브, 인스타 알고리즘, 나에게 이로울까?

데일리매거진 2025. 10. 13. 13:00

 

우리는 매일같이 취향을 말하고, 취향을 기준으로 무언가를 선택합니다. 옷을 고르고, 영화를 고르고, 커피 한 잔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설명하죠.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면, 그 ‘좋아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반복되는 추천, 트렌드, SNS 피드 속에서 생긴 호감일 수도 있고, 어쩌면 타인의 선택에 편승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내 취향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구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워졌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조차 데이터로 유통되는 시대에, 우리는 진짜 나를 만나고 있는 걸까요?

 


알고리즘이 추천한 콘텐츠, 정말 ‘내 취향’일까?

 

 

플랫폼은 당신이 본 영상, 눌렀던 상품, 머물렀던 화면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알고리즘은 익숙함을 ‘취향’으로 포장해 지속적으로 유사한 콘텐츠를 보여줍니다. 처음엔 흥미로웠던 추천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선택의 자율성은 흐려지게 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위는 점점 자동화되며 나는 그저 ‘익숙한 것’을 선택하는 기계처럼 변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진짜 취향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의 루프에 갇힌 셈일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편리하지만, 동시에 진짜 나를 흐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유행에 끌리는 마음, 진짜 내 선택일까?

 

 

한번쯤은 ‘이건 다들 하니까 나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어떤 것을 소비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SNS에서 유행하는 식당, 모두가 입는 브랜드, 지금 떠오르는 컬러. 유행은 취향을 반영한다기보다 종종 취향을 만드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나만의 감각’이 아니라 ‘주변에서 자꾸 보이니까’일 때, 그것이 진짜 내 선택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유행은 사회의 흐름을 따르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지만, 나만의 목소리를 찾는 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SNS ‘좋아요’가 취향을 왜곡시키는 방식

 

 

SNS에 올린 사진에 ‘좋아요’가 많이 달리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성공적인 선택’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나의 취향이 아니라 ‘다수가 좋아해준 것’이 기준이 되는 순간, 실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더 많은 반응을 얻기 위한 선택은 점점 ‘진짜 나’와 멀어지게 만들죠. 팔로워의 기대에 맞추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점점 타인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고 있습니다. ‘좋아요’는 피드백일 수 있지만,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기준은 아닙니다.

 


 

취향과 소비, 감정이 아닌 데이터로 관리되는 시대

 

 

‘좋아한다’는 감정은 이제 감각보다는 데이터로 설명되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내가 뭘 자주 보고, 자주 사는지를 분석한 수치는 곧 나의 취향이 됩니다. 이는 효율적인 소비를 위한 정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감정의 즉흥성과 우연성을 배제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감정은 일관되지 않기에 재밌고, 예상하지 못한 조합이 있어야 새로운 취향이 탄생합니다. 그러나 데이터 기반의 분석은 ‘안정된 패턴’만 남기고, 실험적 취향의 여지를 줄여줍니다.

 


 

취향이라는 단어에 붙는 사회적 이미지

 

 

‘취향’은 개인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특정 이미지를 동반합니다. 고급스러운 것, 감각적인 것, 독특한 것을 선호한다고 하면 ‘취향 있다’는 말을 듣지만, 대중적이고 익숙한 선택은 종종 폄하되기도 합니다. 이는 취향을 ‘계급적 상징’으로 소비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기보다 ‘괜찮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게 합니다. 결국 개인의 감정보다 타인의 시선을 먼저 고려하게 되는 환경에서 취향은 점점 ‘보여주는 것’이 되며, 진짜 ‘좋아함’은 사라지고 ‘좋아 보이는 것’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문화 콘텐츠 과잉 속 선택 피로의 일상화

 

 

보고 싶은 영화 하나 고르기가 이토록 어려웠던 적이 있을까요? 넷플릭스, 유튜브, 왓챠, 웨이브, 티빙… 볼거리는 넘치지만, 선택은 점점 더 피로해집니다. 너무 많은 콘텐츠와 추천 속에서 우리는 점점 무력해지고, 결국 알고리즘이 주는 것을 ‘그냥’ 소비하게 됩니다.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선택의 주체성은 약해졌습니다. 취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한 ‘소극적 수용’이 일상이 된 셈입니다.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내 취향은 오히려 흐려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합니다.

 


 

추천 시스템에 대한 학습 효과, 반복의 함정

 

 

온라인 플랫폼은 사용자의 행동을 분석해 다음 선택을 유도합니다. 그런데 그 추천은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꾸 보이니까’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반복은 플랫폼에는 학습이고, 사용자에게는 익숙함이라는 함정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점점 헷갈리게 되고, ‘계속 보던 거니까 본다’는 습관은 결국 선택의 기준을 흐리게 만듭니다. 결국 추천 시스템이 나를 학습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그 시스템에 길들여지는 이중적인 구조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비교 속에서 흔들리는 나만의 기준

 

 

SNS나 리뷰, 별점 문화가 확산되면서 우리는 무엇이든 비교하고 판단받는 구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영화 한 편, 커피 한 잔조차 ‘몇 점짜리인지’ 고민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내 판단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타인의 시선이 끊임없이 개입하는 환경에서는 나만의 기준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취향이란 본래 주관적인 것이지만, 비교는 이를 객관화하려 하고, 거기서 오는 혼란은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을 약하게 만듭니다. 

 


 

무관심과 몰입 사이, 취향은 어떻게 자라는가

 

 

우리는 종종 ‘정말 좋아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어느 순간 몰입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죠. 취향은 단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노출과 우연한 경험, 감정의 흔들림 속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빠르게 소비하고 판단하는 시대에선 이런 ‘자라는 시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즉각적인 반응이 없는 것은 실패처럼 여겨지고, 그 안에 숨은 감정의 씨앗은 놓치게 되기 마련입니다. 취향은 사실 천천히 이해할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다시 질문해보는 시간

 

 

이제는 질문이 필요할 때입니다. 나는 왜 이걸 좋아하게 되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좋다고 느끼는가? 혹시 익숙함이나 피드백 때문에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은 진짜 취향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고, 그 변화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며, 취향이란 정체성이 아니라 흐름이고 감정이며 선택의 기록이 됩니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것이 진짜 나다운 것인지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진짜 ‘나만의 취향’을 만드는 첫걸음일지 모릅니다.